태국의 정령 문화와 빨간 환타의 만남

작성자 : 관리자 날짜 : 2023/03/27 16:46

태국의 정령 문화와 빨간 환타의 만남

서양 사람들에게는 생소하지만 같은 동양인들에게는 익숙한 태국의 문화, 집안에 들어갈 때는 신발을 벗는다거나 기독교 외의 다양한 종교가 있으며 부모님께 절대 대들지 않는 착한 마음씨를 보유하거나 또는 영혼이나 귀신에게 먹을 것을 제공한다거나..
태국에서는 특히 영혼이나 정령 또는 신의 존재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는 것은 아주 흔한 일이다. 모두들 이 세상에 함께 존재하는 영혼들에게 적절한 대접을 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이런 문화와 믿음은 특별히 태국에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중국, 일본 그리고 한국에도 흔히 존재하는 문화이다. 귀신에게, 영혼에게 그리고 조상들에게 떡이나 밥 또는 각종 음식들을 대접하는 것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하지만, 영혼에게 빨간색 환타(또는 est 딸기맛) 음료에 빨대를 꽂아 바치는 일은 사실, 흔한 현상은 아닐 것이다.
태국에서 영혼에게, 정령의 집에 그리고 귀신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제물은 단연코 빨간색 물, 빨간색 딸기맛 환타, 바로 ‘남뎅’(빨간물)이다.
누가, 왜, 언제부터, 빨간색 환타를 정령의 집에 바쳤는지에 대한 정확한 이유나 시기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누군가 시작한 신 또는 정령들에게 빨간색 환타를 바치는 것은 이제 아주 흔한 일이 되어버렸고 방콕 시내의 유명 정령의 집 인근 소매상에서는 노란색 꽃 목걸이와 빨간색 초, 향과 함께 항상 빨간색 환타를 준비해 판매하고 있다.

 우선 정령의 집은 무엇인가? 

태국어로는 ‘싼 프라 품’이라고 부르는 정령의 집, spirit house는 태국의 가정집은 물론 대형 건물의 가장 신성한 곳에 위치한다. 그 모양은 각양각색으로 럭셔리한 크리스탈부터 나무로 만들어진 소박한 것까지 다양하다.

영혼과 신의 존재를 굳건히(?) 믿고  있는 태국 사람들은 각 지역마다 특별한 지신, 땅의 신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집을 지을 때 가장 먼저 선정하는 것이 정령의 집, 싼프라품의 위치이다. 지역 유명 스님이나 브라만교 신부에게 위탁해 결정되는 정령의 집은 다양한 모습으로 만들어진다.

매일 아침 태국 사람들은 출근전 정령의 집에 기도를 하거나 향을 바치고 특별한 날에는 음식이나 꽃을 바치기도 한다. 싼프라품은 그 집이나 빌딩에 머무는 사람들을 보호하거나 행운을 주며 악운과 불행을 막아준다고 믿는다.



센트럴월드 앞 정령의 집, 붉은 색 제물들로 가득한 이곳은 주로 젊은이들이 많이 몰리며 이들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과의 영원한 행복을 기원한다

집을 짓거나 건물을 올리면 그 곳에 이미 살고 있던 토지신을 화나게 할 수도 있으므로 신에게 머물 곳을 바치며 화를 면함과 동시에 항상 신에게 먹을 것과 꽃을 바치며 행운을 기원하기도 하는 싼프라품은 태국인들에게 있어서는 아주 중요한 일상의 필수품(?)이라고 할 수 있다.

방콕에서 가장 유명한 정령의 집으로는 에라완 사당과 그 대각선에 위치한 센트럴월드 광장 앞 정령의 집이 있다. 특히 센트럴월드 앞 정령의 집은 사랑을 완성해 주는 사랑의 집으로도 유명하며 그래서 이곳에서 사람들은 자신들의 사랑을 굳건히, 이루어지게 해 달라며 빨간색 장미꽃과 빨간색 향과 초 그리고 남뎅, 빨간색 환타를 바치며 사랑의 완성을 기원한다.

 빨간 환타, 남뎅 

붉은 색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아주 특별한 색이다. 왕의 색이라고도 불렸던 붉은 색은 특히 영혼, 정령 그리고 신과 같은 미스테리한 분야에서는 굉장히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용맹함과 충성을 의미하는 붉은 색은 옛날, 색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다양하지 못했을 때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허용되었던 색깔이기도 하다. 특히 중국에서는 붉은 색이 아주 길한 색으로 여겨지며 전통적으로 기쁨, 경사, 인기, 혁명, 혼인, 금전운 등 좋은 쪽 의미가 두드러지는 색이다.

오래 전에는 붉은 색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쉽지 않았다. 신에게 바칠 붉은 색을 쉽게 취하는 방법은 피, 즉 혈액이었다. 신에게 무언가를 바치는 행위에 동물의 피가 사용된 적은 수없이 많다. 특히 무언가 길하고 좋은 것을 원할 경우 사람들은 피를 바치며 요구했다. 그만큼 본인의 의지가 강하다는 것을 표현하는 방법이었을 것이다.

남뎅, 빨간색 환타를 바치기 시작한 것은 바로 이런 붉은 색 음료가 피를 대신하면서 본인의 간절함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지금은 동물들을 희생하며 피를 바치는 어려움 보다는 달콤한 붉은 색 환타를 바치며 피를 대신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되어진 것으로 여겨진다.

태국의 붉은 색 환타 판매량은 그 보다 훨씬 많은 인구수를 자랑하는 다른 나라들 보다 많은 편이다. 통계에 따르면 태국은 전 세계 4위의 소비량을 자랑한다. 빨간색 딸기맛 환타를 인구수에 상관없이 세계에서 네번째로 많이 소비하는 곳이 바로 태국 인 것이다.

훨씬 적은 수의 국민을 보유하고 있는 나라가 어떻게 미국보다, 중국보다 많은 양의 딸기 맛 환타를 소비하게 되었을까?

 환타의 탄생 

세계2차대전 당시 독일을 상대하는 연합국으로 참전을 선언한 미국, 미국은 전 세계에 코카콜라를 수출했다. 미국 약사인 ‘존 스티스 펨버턴’에 의해 만들어진 코카콜라는 자양강장제 또는 감기약으로 만들어졌고 초기에는 와인이 들어가 있었다고 한다. 이후 탄산수를 넣으며 지금의 코카콜라가 틴생했다.

그리고 독일은 미국 다음으로 코카콜라를 많이 소비하는 나라였다.

일을 마친 노동자들이 저렴한 가격으로 갈증을 달래던 음료였던 코카콜라는 전쟁중에는 병사들에게 무기만큼 중요한 기호품으로 각광을 받았다. 하지만 미국이 세계대전에 참전을 선언하면서 모든 콜라 원액 수출이 중단되었다. 더 이상 콜라를 만들 수 없게 된 독일 코카콜라 지사장 막스 카이트는 그래서 탄산수에 다른 과일향을 곁들인 코카콜라 대용품을 만들어 낸다. 처음에는 당시 독일에서 가장 흔했던 사과를 이용한 사과맛 음료수를 개발했고 그것의 이름이 ‘환타’가 된 것이다.

마시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의미로 ‘판타지(fantasie)’에서 착안해 만든 이름 fanta(환타)는 그렇게 탄생했으며 이후 포도가 흔하면 포도맛으로, 오렌지가 흔하면 오렌지맛 환타가 만들어졌고 이후 현재에는 약 70여가지의 맛으로 발전하게 된다.

빨강은 인류가 이름붙인 최초의 색으로 알려져 있다.

태국 사람들은 시각을 매우 중시하는 사람들이다. 화려한 색깔은 아주 중요한 가치를 가지고 있으며 그래서 아주 밝고 찬란한 빨간 색이 정령의 집과 잘 어울리는 색이라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리고 붉은 색을 중시하는 중국 문화의 유입도 크게 한 몫을 했을 것이다.

태국 정령의 집에는 수많은 종류의 제물이 바쳐진다. 그 정령의 집이 모시는 신의 종류에 따라 케이크, 과일, 술 또는 카우팟 같은 정식 음식까지도 바치며 때로는 얼룩말 동상을 바쳐 정령을 좋은 곳으로 데려다 달라고 기원하기도 한다. 나무 정령에게 화려하고 예쁜 옷을 바치며 그 나무를 문질러 복권 번호를 요구하기도 하는 태국인들은 비단 불교 뿐아니라 브라마, 비슈누, 시바 등의 힌두교 신은 물론 태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대왕, 라마5세를 위한 제물도 마련된다. 라마 5세에게는 주로 담배와 브랜디 또는 위스키를 바치곤 한다.

무엇을 바쳐야 할지에 대해서는 딱히 정해진 것이 없다. 하지만 태국인들 사이에서는 암묵적인 무언가를 통한 룰이 존재한다. ‘쿠만 통’에게는 쿠키와 빨간색과 초록색 음료를 바쳐야 한다는 등의 룰.

라마1세는 정령의 집 제물로 동물의 피를 바치는 행위를 금지시켰다. 이후 사람들은 야자수와 설탕 그리고 여섯가지 허브 에센스를 이용해 핑크색 물을 만들어 바쳤으며 이를 ‘남야 타이 팁’이라 불렀다. 빨간색 환타의 탄생은 이들에게 남 야 타이 팁을 만들 수고를 덜어주는 역할을 했다. 훨씬 더 편하게 영롱한 빨간 빛깔의 단맛 음료를 바치게 되면서 아마도 이들은 신을 즐겁게 할 수 있다고 믿는 듯 하다. 그럼으로써 자신들의 기원도 쉽게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라 믿을 것이다. 그리고 달고, 빨갛고 그리고 편리함은 태국 문화속에 깊숙히 자리잡게 된다.

정작 코카콜라는 자신들의 생산품이 사람들로 인해 소비되지 않고 그저 정령의 집에 바쳐지며 그렇게 ‘버려’진다고 생각할까? 코카콜라사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는 그러나 크게 중요하지 않다. 태국인들과 빨간색 환타와의 관계는 영혼의 관계이다. 그렇다고 해서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도 없다. 다만, 태국 친구들은 딸기맛 환타를 본인이 마시기 위해 구입하지는 않는 다는 것이며 그래서 그들과 함께 있을 때는 빨간색 환타를 마시며 놀림받지 않을 것을 당부한다.

아기 유령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말이다.